투자를 시작하려는 직장인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단계는 의외로 고민 단계다.
상품은 수천 개에 달하고, 계좌 종류도 연금저축, IRP, ISA, 해외주식 계좌까지 여러 갈래라 뭐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래 투자해 온 사람들의 계좌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화려한 개별 종목보다는 단순한 지수 ETF 몇 개를 정해 두고, 그걸 어떤 계좌에 어떤 순서로 담을지부터 확실히 정해 두었다는 점이다.
이 순서를 정하는 기준은 결국 세금이다.
같은 ETF를 사더라도 어느 계좌에 담느냐에 따라 나중에 내 손에 쥐어지는 실제 돈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채워야 할 곳은 단연 연금저축이다.
연 600만 원까지 세금을 깎아주는 혜택(세액공제)을 받고, 여기에 IRP 300만 원을 더하면 연 900만 원까지 혜택을 챙길 수 있다.
총급여가 5,500만 원 이하라면 16.5%, 그보다 많으면 13.2%를 돌려받는다. 900만 원을 꽉 채웠을 때 연말정산으로 대략 119만 원에서 148만 원 정도가 돌아오는 셈이다.
투자 수익이 나기도 전에 확정으로 돈을 버는 꼴이니, 1순위로 꼽는 게 자연스럽다. 다만 이미 낸 세금이 있어야 돌려받는 구조라 소득이 있는 직장인일수록 효과가 커진다.
연금저축에 담을 상품으로는 KODEX 미국S&P500이 가장 무난해 보인다.
미국을 대표하는 500개 우량 기업에 원화로 한 번에 투자할 수 있고, 운용사들끼리 수수료 내리기 경쟁을 벌인 덕분에 보수 비용도 거의 0에 가깝다. 환율 변동에 그대로 노출되는 상품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통 증시가 크게 흔들릴 때는 달러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주가가 떨어진 만큼을 환율이 일부 메워주는 안전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IRP는 조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규정상 주식 같은 위험자산은 70%까지만 담을 수 있고, 나머지 30%는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자산 70%에는 KODEX 미국나스닥100처럼 성장성이 높은 상품을 넣고, 안전자산 30%에는 1Q 미국나스닥100미국채혼합50액티브 같은 채권혼합형 ETF를 넣는 방식이 자주 쓰인다.
이 상품은 나스닥100과 미국 국채를 반반씩 담아 안전자산으로 인정받는데, 이렇게 구성하면 계좌 전체의 나스닥 비중을 70%에 15%를 더해 8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30%를 그냥 예금에 묶어 두는 것보다 공격적으로 굴릴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그만큼 하락장에서는 흔들림도 커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금을 줄여주는 한도를 다 채웠다면 다음은 ISA다.
ISA는 투자로 번 돈에 붙는 세금을 줄여주는 계좌인데, S&P500, 나스닥100, KODEX 200을 나누어 담는 구성이 기본형으로 많이 쓰인다.
흥미로운 건 ISA를 단순한 투자 통장이 아니라 연금으로 가는 중간 정거장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3년 의무 가입 기간이 지난 뒤 만기금을 연금저축으로 옮기면, 옮긴 금액의 10%(최대 300만 원)를 추가로 세액공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3년 뒤 연금으로 넘길 돈이라면, 그동안은 반도체 ETF처럼 조금 더 공격적인 분야에 투자해 보는 식으로 다르게 운용할 수도 있다. 계좌마다 역할을 나누어 생각하면 이런 응용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다음으로는 연금저축의 남은 한도를 더 채우는 방법이 있다.
연금계좌는 IRP와 합쳐 연 1,800만 원까지 넣을 수 있으므로, 앞에서 채운 900만 원을 빼면 900만 원의 여유가 남는다. 이 금액은 세액공제 혜택은 없지만, 나중에 연금으로 꺼내 쓸 때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미뤄주는(과세이연) 효과가 있어 장기 투자에는 여전히 유리한 편이다.
절세계좌 한도를 싹 채우고도 여유가 있다면 해외주식 계좌에서 VOO, QQQM, SCHD 같은 미국 ETF를 직접 사 모으는 단계로 넘어간다.
VOO는 S&P500 지수를 연 0.03%라는 매우 낮은 수수료로 따라가는 대표 상품이고, QQQM은 기존 QQQ보다 한 주 가격과 수수료 부담을 낮춰 매달 적립식으로 모아가기에 알맞다.
SCHD는 10년 이상 배당을 꾸준히 늘려온 탄탄한 기업 100여 개를 담은 상품으로, 기술주 비중이 높은 앞의 두 상품과 섞어주면 포트폴리오가 한쪽으로 쏠리는 걸 막아준다.
국내 투자 쪽에서는 KODEX 200이 기본이다.
코스피 상위 200개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우리나라 1호 ETF로, 미국 증시가 너무 올랐다고 느껴질 때 상대적으로 덜 오른 국내 시장에 돈을 나누어 두는 용도로 쓰기 좋다.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주주환원 정책의 효과를 직접 받는 상품이기도 해서, 국내 증시의 체질 개선을 기대한다면 비중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방법이다.
여기에 공제회 가입 자격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공제회 저축도 우선순위 끝자락에 넣어둘 만하다. 안정적인 성향이라면 공제회 저축과 미국 지수 비중을 함께 높이는 게 마음 편한 선택이 된다.

은퇴 전까지가 자산을 굴리고 키우는 시기라면, 은퇴 후는 모아둔 자산에서 매달 생활비를 꺼내 쓰는 시기다.
이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배당금과 월분배 상품이다.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는 SCHD와 같은 지수를 따르는 국내 상장 ETF라 연금계좌 안에서도 매달 분배금을 받을 수 있다.
KODEX 200타겟위클리커버드콜 같은 커버드콜 상품은 주식 옵션을 팔아 얻는 수익(프리미엄)으로 높은 분배금을 주는 구조다.
특히 이런 옵션 수익은 세금이 붙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은퇴 후 금융소득종합과세나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해외 직접투자 쪽에서는 SCHD와 함께 나스닥100 기반 커버드콜인 JEPQ, GPIQ, QQQI 등이 자주 거론된다. JEPQ는 운용 기록이 길어 쌓인 데이터가 많다는 점이, GPIQ는 최근 성과 흐름이 좋다는 점이 각각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커버드콜은 매달 돈을 받는 데 강한 상품이지 자산을 키우는 데 강한 상품은 아니다. 주가가 크게 오를 때는 상승 폭을 다 따라가지 못하고, 하락장에서는 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산을 한창 모아야 할 시기에 커버드콜 비중을 크게 가져가기보다는, 은퇴가 가까워지거나 은퇴 후 생활비 흐름을 만드는 용도로 비중을 늘려가는 편이 상품 성격에 맞다.
이런 구성을 종합해 보면 핵심은 큰 덩어리는 지수 ETF에 넣어두고, 최대한 손대지 않는 원칙으로 모인다.
실제로 오래 투자해 온 사람 중에는 자산의 80% 정도를 지수 ETF로 세팅해 두고 20년 가까이 건드리지 않은 채 은퇴 자금으로 묶어둔다.
그리고 나머지 20% 정도만 개별 종목으로 사고팔며 투자의 재미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전체를 흔드는 것보다, 처음부터 소액으로 즐길 몫을 작게 떼어두는 것이 오히려 오래 버티는 비결이 되는 셈이다.
이미 개별 종목에 물려 있는 상태라면 한꺼번에 정리하기보다 원금이 회복되는 대로 조금씩 지수 ETF로 옮겨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제 막 투자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이 계좌 순서는 좋은 출발점이 된다. 다만 나이, 소득, 가까운 시기에 목돈이 필요한지에 따라 정답은 달라진다.
아직 연봉이 높지 않거나 집 마련처럼 큰돈이 곧 필요한 2030 세대라면, 수십 년간 돈이 묶이는 연금 계좌보다는 중도 인출이 비교적 자유로운 중개형 ISA나 해외 직접투자 위주로 시작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정해진 답을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이런 기본 뼈대를 하나 세워 두고, 공부해 가면서 내 상황에 맞게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오래가는 나만의 투자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기록이며, 특정 상품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는 글이 아니다. 세액공제 한도, 계좌 규정, 수수료 등은 변경될 수 있으니 투자 전 금융사와 관련 기관의 최신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투자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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