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언제 받을지는 50대 후반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머리를 싸매는 문제다.
일찍 받으면 평생 깎인 금액을 받고, 늦게 받으면 더 많이 받지만 그만큼 오래 살아야 본전이 된다.
최근 59세에 국민연금을 5년 당겨 받기 시작한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이 문제를 계산기만으로 풀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7년 1월생인 남편은 원래 64세부터 월 200만원 정도를 받을 예정이었다. 59세가 된 올해 2월부터 조기수령이 가능했지만, 마지막까지 한두 달을 더 고민하다가 4월에야 신청을 했다고 한다.
5년을 당겨 받다 보니 실제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140만원대다. 매달 60만원 가까이 덜 받는 셈이지만, 반년을 지내 본 부부의 결론은 매우 만족이었다.
만족의 이유는 의외로 돈의 크기보다 돈의 주인에 있었다.
전에는 남편의 용돈이 가족 생활비에서 함께 나가다 보니,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하나하나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 이름으로 들어오는 연금에서 용돈을 쓰기 시작하자 생활비가 들쑥날쑥하지 않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생활비에서 쓸 때는 별 생각 없이 쓰던 남편이 내 연금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아껴 쓴다는 점이다.
외식할 때 먼저 카드를 내밀고, 친척 아이들이 오면 눈치 보지 않고 용돈을 챙겨 주고, 한 달에 다 쓰지 못한 40~50만원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보태 준다고 한다.
은행 서류의 자금 출처 칸에 직업 없음 대신 연금 수령자라고 적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어깨가 펴진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식도 팔아서 현금으로 바꿔야 비로소 내 돈처럼 느껴지듯, 연금도 받아서 써 봐야 내 돈이라는 말이 꽤 와닿는다. 아무리 큰 숫자라도 계좌에 찍히지 않으면 마음의 여유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숫자로만 보면 분명 손해다.
물론 계산만 놓고 보면 조기수령은 손해가 맞다. 국민연금은 한 달 당길 때마다 0.5%, 1년에 6%씩 깎이고 5년을 당기면 30%가 평생 줄어든 채로 나온다. 반대로 늦추면 1년에 7.2%씩 늘어나 5년이면 36%가 더 붙는다.
총액으로 따져 보면 5년 일찍 받는 사람이 앞서가다가, 정상수령한 사람이 76세 무렵에 따라잡는 구조다.
59세부터 받은 70%와 64세부터 받은 100%를 단순 비교하면 대략 75~76세에서 두 금액이 같아진다. 즉 76세 이후로 오래 살수록 정상수령이 유리해지는 것이다.
다만 이건 단순 계산이고, 연금액을 정하는 기준 중 하나인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A값)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까지만 반영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조기수령과 정상수령의 차이가 30%보다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도 알아 두면 좋다.
같은 이유로 연말 무렵 신청을 앞둔 분이라면 해가 바뀐 뒤 시작하는 게 조금 유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공단에 시점별 금액을 꼭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여기서 하나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조기수령을 하면 깎인 금액이 평생 고정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인데, 조기연금도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금액이 올라간다. 깎이는 건 출발 금액이지 물가 반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부의 선택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3년이나 4년이 아니라 굳이 최대치인 5년을 당겼다는 점이다.
아내가 앞으로 10년 정도는 직장을 다닐 수 있어서, 남편을 아내의 직장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계속 올려 두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피부양자는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을 포함한 소득이 1년에 2,000만원을 넘으면 자격을 잃는다.

한 달로 치면 약 166만원 정도다. 정상수령으로 월 200만원을 받으면 1년에 2,400만원이라 바로 피부양자에서 빠지고 지역가입자로 따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5년 당겨 140만원대를 받으면 1년 1,700만원 남짓이라 기준 아래에 머물 수 있다. 30%를 덜 받는 대신 건강보험료 부담을 피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개인연금이나 IRP 같은 사적연금은 이 소득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면 좋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 연금은 매년 물가만큼 오르기 때문에, 몇 년 뒤에는 이 금액이 기준선에 가까워질 수 있다. 또 건강보험 기준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있으니 지금 기준이 영원하다고 믿기보다는 해마다 한 번씩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해 보인다.
유족연금까지 보면 차이는 생각보다 줄어든다.
부부가 둘 다 국민연금을 받는 경우라면 한 가지를 더 따져 봐야 한다.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배우자는 내 연금 전액 + 유족연금의 30%와 유족연금 전액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유족연금은 떠난 사람이 조기수령으로 깎여서 받던 금액이 아니라, 원래 기준이 되는 기본연금액을 바탕으로 가입 기간에 따라 40~60%로 계산된다.
이 말은 곧, 연금을 늦춰서 많이 받던 사람이 일찍 떠나면 늘어난 몫이 유족에게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부 중 한 사람은 정상이나 연기로 받고, 연금이 적은 쪽은 일찍 당겨 받는 식으로 나누는 집도 많다.
다만 적은 쪽은 무조건 5년 조기라는 공식은 없다. 아내 연금이 남편의 6분의 1 수준이라면 애초에 조기냐 정상이냐의 차이가 크지 않으니, 금액보다는 생활비가 비는 시기를 기준으로 정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또 중간에 쉬었던 기간이 있다면 추후납부로 가입 기간을 늘려 배우자가 받을 유족연금까지 미리 챙기려는 분들도 있다. 이 역시 늘어난 연금이 건강보험 피부양자 기준을 넘기지 않는지 함께 봐야 한다.
조기수령이 맞지 않는 분들도 분명 있다.

모두에게 조기수령이 정답은 아니다. 우선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일정 기준(전체 가입자 평균소득 수준)을 넘으면 조기수령 신청 자체가 제한되고, 받는 중에 소득이 생기면 지급이 멈출 수 있다.
아직 현역으로 수입이 넉넉한 분이라면 어차피 쓸 곳도 없는 연금을 일찍 받아 건강보험료만 늘리는 것보다, 건보료가 붙지 않는 개인연금을 먼저 꺼내 쓰고 국민연금은 늦추는 쪽이 나을 수 있다.
이미 다른 소득 때문에 피부양자에서 빠진 분, 집안 어른들이 대체로 장수하셨고 본인 건강에도 자신 있는 분, IRP나 임대료처럼 당장 생활비를 받쳐 줄 다른 주머니가 있는 분이라면 오히려 너무 오래 사는 위험을 대비해 정상수령이나 일부 연기를 고민해 볼 만하다.
퇴직금이 IRP에 있다면 원금을 크게 헐지 않고 매달 나오는 분배금 위주로 생활비를 받치는 방법을 공부해 보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상품은 원금이 오르내릴 수 있으니 구조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 접근하는 게 좋겠다.
차라리 남편의 퇴직연금부터 꺼내 쓰고 국민연금은 아껴 두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조기수령 전에 건강검진을 한번 받아 보고 결정하겠다는 분도 있는데, 나는 이게 꽤 현명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손익분기점이 76세 근처라는 건, 결국 이 선택이 내가 그 나이 이후를 얼마나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기준은 계산기가 아니라 생활이다.
이 부부가 조기수령을 결정한 계기도 사실 숫자가 아니었다. 남편이 한 달 가까이 심한 어지럼증으로 고생한 뒤 아플 때는 돈이 있어도 못 쓴다며 먼저 신청하자고 했다고 한다.
70대 초반에 병원에 오래 계시게 된 아버지를 보며, 그래도 조금 일찍 연금을 받아 쓰신 게 다행이었다고 느꼈다는 자녀의 경험도 비슷한 이야기다.
나중에 60만원 더 쓰는 것보다 지금부터 60만원 덜 쓰면서 길게 쓰겠다는 생각, 나는 이 말이 조기수령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가장 쓸모 있는 기준이라고 본다.
몸이 가볍게 움직이는 60대 초반의 100만원과 80대의 100만원은 같은 돈이 아니니까. 반대로 노후 자금이 넉넉하고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의 든든함을 최대한 키우고 싶다면 연기연금도 좋은 선택이다.
국민연금의 수령 나이가 앞으로 더 늦춰질지 모른다는 불안도 크지만, 결국 확실한 건 내 생활비가 비는 시기, 내 건강, 그리고 건강보험료와 세금이라는 현실적인 숫자다.
조기냐 정상이냐 연기냐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상황에 맞는 순서를 찾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고민 중이라면 국민연금공단에서 수령 시점별 예상 금액을 먼저 받아 보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기준까지 함께 놓고 비교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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