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내 일자리를 빼앗기 전에, 내 프로그램부터 빼앗을 수 있을까?
요즘 주변에서 AI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AI가 소프트웨어 산업 자체를 날려버릴 것이다라는 주장과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 논쟁이 흥미로운 이유는, 양쪽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현장에서 AI를 써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바이브 코딩으로 관리툴을 만들었다. 그런데?
코딩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AI를 이용해 간단한 메모장 앱을 1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
실제로 AI 코딩 도구를 활용하면 웬만한 사내 관리 툴 정도는 이틀 안에 흉내 낼 수 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인상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적인 벽이 하나 나타난다.
만드는 것과 유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프로그램은 한 번 만들고 끝이 아니다. 계속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버그가 생기면 고쳐야 하고, 회사 상황이 바뀌면 기능도 바뀌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결국 사람 손이 필요하거나 API 비용이 꾸준히 나가게 된다.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미 잘 돌아가는 기존 소프트웨어를 굳이 AI로 새로 만들 이유가 없다. 회사에서 그걸 성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즉, AI는 만드는 비용을 낮춰줬지만, 운영하는 비용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AI가 완벽해지면 엑셀도 없어지겠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생각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엑셀과 파워포인트가 강한 이유는 기능 때문만이 아니다.
전 세계 수억 명이 같은 포맷으로 수십 년 동안 데이터를 쌓아왔다는 사실이 진짜 힘이다.
마치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유가 달러 자체가 특별히 아름다워서가 아닌 것처럼, 모두가 쓰기 때문에 계속 써야 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거래처에 보내는 견적서, 팀장에게 올리는 보고서, 협력사와 공유하는 데이터.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xlsx, .pptx 파일로 오가고 있다.
그 데이터의 양과 관성은 어지간한 기술 혁신으로도 하루아침에 흔들리기 어렵다.
더 중요한 건, 마이크로소프트도 가만히 앉아서 대체당하길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도 코파일럿을 엑셀에 통합하고 있고, 파워포인트에 AI 기능을 계속 추가하고 있다. AI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가 AI를 흡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AI는 소프트웨어의 적이 아니라 연료다.
게임 개발 현장을 예로 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AI가 아무리 게임 콘텐츠를 자동으로 만들어줘도, 그 결과물은 결국 게임 엔진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나와야 한다.
AI가 코드를 짜줘도 그 코드를 실행할 플랫폼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AI가 글을 써줘도 워드가 필요하고, AI가 데이터를 분석해줘도 엑셀이나 대시보드 툴이 필요하다.
AI는 소프트웨어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쓸모를 더 높여주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결국 AI와 소프트웨어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공생 관계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제로 위협받고 있나?
솔직히 말하면, AI 때문에 위협받는 건 소프트웨어 자체가 아니라 특정 조건을 갖춘 소프트웨어들이다.
복잡한 기술이 없어도 만들 수 있고, 특별한 데이터나 커뮤니티 없이도 굴러가는 단순한 SaaS 서비스들이 그 대상이다.
전자서명 서비스처럼 기능이 단순하고, 누구나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는 것들은 이미 AI로 인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면 수십 년간 쌓인 기업 데이터와 사용자 관성, 그리고 촘촘한 생태계를 가진 대형 소프트웨어는 지금 당장은 끄떡없다.

단기적으로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인력 감축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소프트웨어를 새로 만드는 용도보다는, 개인의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훨씬 더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중이다.
진짜 무서운 건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시간 축을 아주 길게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몇몇 사람들은 범용 인공지능(AGI)이나 그 이상의 기술이 현실화되면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말한다.
그 시대가 오면 마이크로소프트도, 구글도, 엑셀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변화가 오면 소프트웨어 대체 여부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돈의 개념과 일자리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AI 때문에 엑셀 주식이 폭락한다는 시나리오는 조금 과장된 이야기일 수 있다.
변화는 분명히 오겠지만, 그 속도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느릴 가능성이 크다.
AI가 소프트웨어를 대체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본다.
단순하고 얕은 소프트웨어는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이터와 관성, 그리고 거대한 사용자 생태계를 등에 업은 소프트웨어는 당분간 건재할 것이다.
AI는 이 소프트웨어들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녹아들어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결국 살아남는 건 AI를 두려워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AI를 잘 흡수한 소프트웨어일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을 제일 잘 읽고 있는 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많이 대체될 것이라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