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을 DC형으로 운용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안전자산 30% 의무 편입 문제다. 위험자산은 70%까지만 담을 수 있고, 나머지 30%는 반드시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한다는 규정이다.
문제는 그 30%를 어디에 넣느냐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냥 정기예금에 넣으면 되겠지 싶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오랫동안 정기예금으로만 안전자산을 채워왔다.
원금이 보장되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정기예금만으로 30%를 묻어두는 게 과연 최선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전자산이라는 말,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안전자산이라는 분류 자체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안전하다고 해서 수익이 없거나, 반드시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안전자산으로 분류된 상품 중 일부는 2개월 만에 30%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무늬는 안전이지만 내용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채권이 안전자산의 대표로 오랫동안 꼽혀왔지만, 최근 들어 채권만으로는 안전자산으로서의 매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시각도 늘고 있다.
금리 환경이 바뀌면서 채권 가격이 흔들리는 일이 잦아졌고, 예전처럼 무조건 안전하다고 믿기 어려워졌다.
결국 안전자산 30%를 어디에 넣을지는 단순히 안전하냐만 따질 게 아니라, 유동성과 수익성, 그리고 운용 편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TDF (Target Date Fund)
은퇴 목표 시점을 기준으로 알아서 자산 배분을 조절해주는 펀드다.
TDF 2050, TDF 2060 같은 식으로 숫자가 클수록 더 먼 미래를 목표로 하며, 그만큼 초반에는 주식 비중이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안전자산 비중을 늘려가는 구조다.
DC형 안전자산으로 TDF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글로벌 분산 투자가 자동으로 이뤄지고, 장기적으로 들고만 있으면 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회사가 은행과 DC형을 계약한 경우, TDF 매도에 보름 이상 걸리는 경우가 생긴다.
일반 펀드 방식으로 운용되다 보니 환매 신청 후 실제로 돈이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것이다.

반면 회사가 증권사와 계약되어 있거나, ETF 형태로 상장된 TDF를 취급하는 경우라면 당일 매도도 가능하다.
ETF 방식의 TDF는 주식처럼 장중에 바로 거래할 수 있어서 훨씬 편리하다. 회사의 DC형 계약 형태가 어디냐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진다는 점을 먼저 확인하는 게 순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채권혼합형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 주식과 채권을 섞어 담은 혼합형 상품이다.
주식 단독 투자보다는 변동성이 낮고, 순수 채권보다는 수익 기대치가 높은 중간 지점을 노린다. DC형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덕분에 30% 구간에 넣을 수 있다.
최근에는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 ETF처럼 신규 상장된 상품도 생겨났다.

기존에 삼성전자채권혼합으로만 운용하다가 이 ETF로 갈아타는 흐름도 보인다. 반도체 업황에 어느 정도 연동되기 때문에 완전한 안전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국내 대형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본다.
ACE S&P500 미국채혼합50 액티브
미국 주식(S&P500)과 미국 국채를 절반씩 담는 구조의 ETF다.
시가총액이 1조 원을 넘는 수준으로, DC형 안전자산 ETF 중에서는 규모 있는 편에 속한다. 미국 자산 중심이기 때문에 국내 시장 흐름과 다소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환율 흐름까지 영향을 받는다.
장기적으로 S&P500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걸 안전자산 구간에 채우는 방식도 나름 합리적이다. 수익 추구와 리스크 완화를 동시에 노리는 접근이라 볼 수 있다.
1Q 나스닥100 미국채혼합
나스닥100 지수와 미국 국채를 혼합한 상품이다.
회사 생활이 20~30년 이상 남아 있는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있다. 당장의 안전보다는 장기 성장을 바라보면서, 퇴직이 한참 남았을 때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선택이라 할 수 있다.
DC형 퇴직연금 안전자산 30%는 단순히 안 잃으면 된다는 자리가 아니다.
위험자산 70%가 열심히 달리는 동안 뒤에서 적당히 따라가면서, 전체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몇 가지 기준으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회사 DC 계약이 은행이냐 증권사냐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은행 기반이라면 TDF 환매에 시간이 걸릴 수 있고, ETF 거래가 제한될 수 있다. 증권사 기반이라면 ETF TDF나 혼합형 ETF를 당일 매도할 수 있어 훨씬 유연하다.
둘째, 퇴직까지 남은 기간이 길수록 혼합형 ETF나 TDF 숫자가 큰 쪽을 고려할 만하다.
30년 이상 남은 사람이 안전자산 30%를 전부 정기예금으로만 채운다면, 그 기간 동안의 복리 효과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셋째, 적립식으로 묻어두고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태도가 의외로 수익률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DC형과 IRP는 장기 적립이 목적이다. 단기 시황에 흔들려서 자주 매매하면 오히려 성과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넷째, 안전자산이라 분류되더라도 종목마다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자신의 투자 성향과 퇴직 시점, 현재 포트폴리오 전체 구성을 감안한 선택이 필요하다.
안전자산 30%라는 규정이 처음엔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30%를 어떻게 채우느냐가 장기적으로 퇴직연금 전체 수익률을 좌우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의무이기 이전에, 포트폴리오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회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본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 매도 추천이 아니며, 다양한 관점 중 하나로 참고용으로 보면 된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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