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모으면 은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재테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누군가는 충분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신기한 건 똑같은 10억을 두고도 사람마다 결론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곰곰이 따져보니, 결국 돈의 액수보다 기준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건 이 10억이 누구 기준이냐는 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생각하는 10억과, 배우자에 자녀까지 있는 가정이 생각하는 10억은 사실상 전혀 다른 숫자다.
혼자 산다면 매달 쓰는 돈이 제한적이라 10억으로도 넉넉하게 버틸 수 있지만, 자녀가 둘 있는 4인 가구라면 교육비만 해도 만만치 않아서 똑같은 10억이 훨씬 빠듯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이런 논쟁이 벌어질 때 다들 자기 상황만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말이 안 통하곤 한다.
결국 10억이 충분하냐 부족하냐를 논하기 전에, 몇 명이 그 돈으로 살아야 하는지부터 정해놓아야 이야기가 통한다.
두 번째로 눈에 띈 건 마음가짐의 차이다.
10억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원금은 절대 건드리지 않고 이자나 배당만으로 평생 살겠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하면 웬만한 금액으로는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모아둔 돈을 조금씩 파먹으며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전제로 계산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은퇴 후 3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고 10억을 360개월로 나누면 매달 약 278만 원을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국민연금까지 더해지면 생활비는 한층 여유로워진다. 물려줄 자식이 없는 싱글이라면 이런 방식의 계산이 훨씬 현실적이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부분은 은퇴 후에도 돈이 가만히 멈춰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금 통장에만 넣어두고 매달 조금씩 꺼내 쓰면 물가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주식이나 배당 자산, 채권 등으로 나누어 투자해두면 자산 자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불어나는 경우가 많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내 자산 가치도 같이 올라가는 구조라면, 매달 일정 금액을 꺼내 써도 원금이 생각보다 크게 줄지 않는다.

물론 이건 투자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리므로, 안정적으로 굴리는 방법을 미리 공부해두는 게 은퇴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숙제다.
나이가 들수록 돈을 쓰는 패턴이 달라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흔히 은퇴 후 40년, 50년 동안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며 돈을 쓸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은퇴 직후부터 60대 초중반까지가 여행이나 취미 등 돈 쓸 일이 가장 많은 시기다.
70대를 넘어가면 체력이 떨어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줄어들고, 오히려 병원비 비중이 커진다. 즉 은퇴 자금을 계산할 때는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것인가만큼이나 언제 가장 많이 쓸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에 맞춰 자금 계획을 세운다면 막연히 90세, 100세까지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보다 훨씬 현실적인 그림이 나온다.
혼자 사는 사람과 가정이 있는 집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은 역시 자녀 유무다.
물려줄 사람이 없는 싱글이라면 자산을 서서히 줄여가며 쓰는 방식이 부담 없지만, 자녀가 있는 가정은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같은 금액이라도 훨씬 아껴 쓰게 된다.
아이들의 결혼 자금이나 독립 자금까지 고려하면 필요한 금액 자체가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10억이라는 숫자 하나만 놓고 따지기보다, 이 돈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것인지 아니면 다음 세대까지 고려해서 쓸 것인지에 따라 답이 완전히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국민연금과 집이다.
대출 없는 내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민연금까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다면, 통장에 현금 10억이 없어도 노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반대로 대출이 남아있는 상태라면 같은 10억이라도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훨씬 줄어든다.
집을 담보로 매달 연금을 받는 주택연금을 활용하거나, 여러 소득원을 겹쳐놓아 돈이 들어오는 통로를 여러 개 만들어두면 순수 현금 10억이라는 숫자 하나에만 목맬 필요가 없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것저것 정리해 보니 10억으로 은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몇 명이 살아가는지, 원금을 지킬 것인지 다 쓰고 갈 것인지, 자산을 어떻게 굴릴 것인지, 자녀에게 얼마나 남겨줄 생각인지에 따라 같은 10억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남의 은퇴 기준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남의 기준에 휘둘려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내 소비 습관과 가족 구성, 앞으로의 계획을 먼저 명확히 세우고 그 위에서 필요한 금액을 스스로 계산해보는 일이다.
숫자에 매몰되기보다 나만의 기준을 먼저 세우는 것이 은퇴 준비의 진짜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거라 각자의 소비 습관이나 상황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으니, 본인 상황에 맞게 신중하게 고민해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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